난경(難經) / 임보 시인
창공에도 길은 있다
천만 성군(星群)들이 무리 지어 가는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새들도 날개를 퍼덕이어 지상(地上)을 박차지만
그들이 만난 것은 언제나 추락일 뿐
허공에 띄운 사람들의 철새[鐵鳥]들도
끝내는 불꽃으로 타고 만다
바다에도 길은 있다
헤엄치는 물고기 떼들이
그것을 일러준다, 하지만
사람들이 세운 돛은
매번 떠났던 자리로 되돌아 올 뿐
마지막 도달한 곳은 결국
좌초에 지나지 않는다
날개도 지느러미도 아닌
우리들의 두 다리가 걸을 곳은
어차피 이 지상(地上)이지만
그러나 난마(亂麻)처럼 천만 갈래로 얽히고 찢긴
저 산야(山野)의 길들
그것은 욕망과 좌절의 흔적들일 뿐
아직 하나의 길도 트이지 않았다
사막에도 길은 있다
약대를 끌고 서역(西域)으로 가는 무리들을 보라
길은 있는데
모래 속에 묻혀 있는 하나의 길은 있는데
앞서 간 자들의 발자국이 그것을 오히려 어지럽힌다
그래서 바람은 묵은 발자국들을
모래 속에 다시 묻고
마지막 한 사람
그대가 오기를 또 기다린다.
임보 시인은 2014년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30여년의 역사를 지닌 북한산 '우이시낭송회'에서 많은 시인들과 함께 하고 있다.
본명 : 강홍기(姜洪基)
1962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1988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
충북대 교수 역임
시집 《林步의 시들 〈59-74〉》, 《광화문 비각 앞에서 사람 기다리기》, 《가시연꽃》, 《단상문답》 등 다수.
시론서 《현대시 운율 구조론》, 《엄살의 시학》, 《시와 시인을 위하여》, 《좋은 시 깊이 읽기》, 《미지의 한 젊은 시인에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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