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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재 하남시장이 지난 2022년 ‘제4회 국회자살예방대상’ 시상식에서 자살예방 우수지자체로 선정된 하남시를 대표해 수상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파이낸셜경제=김영란 기자] 힘들다는 말 한마디 건네기 어려운 시대, 하남시는 홀로 아파하는 이웃의 작은 신호에 마음을 기울인다. 문제 발생 후의 대처가 아닌, 마음의 그늘이 깊어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이르기 전 먼저 손 내밀어 함께 걷는 ‘동행’을 시정의 철학으로 삼는다. 단순히 상담하는 것을 넘어, 이웃이 이웃을 살피는 관계를 처방하고 동네 의원과 약국, 종교 공동체를 고립된 마음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마음 이웃’으로 연결한다. 여기에 AI 챗봇과 같은 따뜻한 기술을 더해 소통의 문턱마저 허문다. 이처럼 한 사람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온 도시가 나서는 하남시의 노력이 어떻게 전국 최고 수준의 놀라운 성과를 이끌어냈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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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5일 하남 미사도서관에서 열린 ‘나의 마음을 마주해요’ 정신건강 캠페인에서 하남시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들이 시민들에게 자가검진과 퀴즈 등을 안내하며 자살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
우리 동네 의원·약국이 ‘마음 주치의’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돌봄
마음의 병은 신호 없이 찾아오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발견될 수 있다. 하남시는 관내 병·의원과 약국을 정신건강 고위험군을 발굴하는 최전선으로 삼는 ‘우리동네 마음의원·마음약국’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25년 기준 병·의원 60개소와 약국 50개소, 총 110개의 의료기관이 이 촘촘한 네트워크에 참여한다.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동네 병원과 약국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조기에 발견해 전문기관인 하남시정신건강복지센터로 자연스럽게 연계하는 방식이다. 이는 정신건강 서비스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지역사회 안전망의 핵심이다.
이 안전망은 종교계와의 협력을 통해 더욱 넓고 깊어진다. 시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3대 종교계와 손잡고 신도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위기자를 발굴·지원하는 활동을 함께 펼친다. 종교 지도자와 신도들이 ‘생명지킴이’가 되어 주변의 이웃을 살피는 이 사업은 행정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곳까지 온기를 전하며 하남시만의 포용적인 돌봄 체계를 완성하고 있다.
문턱은 낮게, 지원은 깊게… 먼저 찾아가는 ‘이동 상담소’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가장 큰 장벽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하남시는 이 장벽을 허물기 위해 ‘찾아가는 이동상담’을 상시 운영한다. 복지관, 임대아파트 단지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직접 찾아가 우울 선별검사를 실시하고, 고위험군에게는 즉각적인 상담과 사례관리 서비스를 안내한다.
특히 생애주기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돋보인다. 6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우울 선별검사, 임산부와 난임 부부를 위한 정서 지원 프로그램, 산후우울예방교육 등 각 계층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에 세심하게 접근한다. 또한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스트레스에 노출된 교산신도시 주민들을 위한 정서지원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하고, 미사강변도시에서는 관리사무소 직원, 야쿠르트 배달원 등 지역주민이 직접 ‘생명사랑봉사단’으로 활동하며 위기 가구를 발굴하는 등 풀뿌리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 이는 시민이 주체가 되어 이웃의 마음을 돌보는 하남시 공동체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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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시정신건강복지센터가 지난 9월 25일 미사역 시계탑 앞에서 ‘세계자살예방의 날’ 기념 캠페인을 진행했다. 시민들은 ‘하남이네 마음약국’ 부스에서 자살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퀴즈를 풀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위로의 메시지를 처방받는 등 자살 예방의 중요성을 체험을 통해 배웠다. |
약 대신 ‘공감’ 처방… 전국 최초 AI 앱과 이색 캠페인으로 혁신
하남시의 정신건강 정책은 딱딱한 행정의 틀을 벗어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지난 9월 25일 미사역 일대를 특별한 약국으로 변신시킨 자살예방 캠페인 '하남이네 마음약국'이 대표적이다. 약국의 접수-조제-복약지도 과정을 재치있게 패러디한 이 행사에서 시민들은 자살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퀴즈를 풀었다. “자살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편견에는 X를,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에는 O를 선택하며 생명 존중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한, 위로의 문구가 담긴 ‘마음 처방 캡슐’을 뽑아보고 허브티, 스팀 안대 등이 담긴 ‘복약지도 키트’를 받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틀 뒤인 27일에는 시민의 날 체육대회 현장에서 '마주해요! 나의 마음' 캠페인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우울 자가검진(PHQ-9)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고위험군으로 확인될 경우 상담 안내와 마음건강 수첩을 받았다. 특히 ‘나만의 실천 방법’을 직접 적어 붙이는 참여형 이벤트는 정신건강 관리가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 속 습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현장 캠페인과 더불어, 지자체 최초로 개발한 AI 기반 감정관리 앱 '하남이네 힐링펫'은 하남시의 혁신을 상징한다. 귀여운 캐릭터와 대화하며 감정을 정리하고 필요시 전문상담으로 연결되는 이 앱은, 출시 7개월 만에 사용자 약 1,000명, 누적 대화 7만 건 이상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정신건강 서비스도 안전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다”는 시민들의 호평은 하남시의 접근법이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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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7일 ‘하남시민의 날’ 행사에서 정신건강 캠페인 「마주해요! 나의 마음」을 성공적으로 마친 하남시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부스에 마련된 마음 검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마음 회복 카드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회복 팁을 안내받았다. |
예방부터 회복까지, 빈틈없는 전주기적 지원 체계
하남시의 마음 돌봄은 단발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예방, 위기개입, 사후관리, 회복의 전 과정을 아우른다. 예방 단계에서는 지역사회 전체를 ‘생명지킴이’로 만드는 데 집중한다. 초·중학생부터 종교인까지 다양한 시민을 대상으로 ‘생명사랑 지킴이(게이트키퍼) 양성 교육’을 실시해 주변의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 또한, 관리가 필요한 일부 물품을 판매하는 가게 10개소를 ‘생명사랑실천가게’로 지정하고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위험 요소를 사전에 줄여나가기 위해 힘쓴다. 자살 고위험 지역에는 희망 메시지를 담은 로고젝터를 설치하는 ‘희망자람 프로젝트’를 통해 어두운 밤길을 심리적으로 밝히는 노력도 병행한다.
위기 상황 발생 시에는 24시간 운영되는 정신건강 핫라인(1577-0199, 109)을 통해 즉각적인 위기 상담과 개입이 이루어진다. 상담을 통해 발굴된 자살 고위험군에게는 사례관리팀이 배정되어 지속적인 관리를 제공한다.
사후관리 및 회복 단계의 지원은 더욱 세심하다. 자살 시도자 등 고위험군에게는 정신과 치료비와 약제비를 지원(생명사랑치료비 지원)하고, 만 65세 이상 어르신에게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비 본인부담금을 지원(어르신마인드케어)하여 경제적 부담 없이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자살 유족들을 위한 자조모임 ‘늘해랑’을 운영하여, 이들이 건강한 애도 과정을 통해 안정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지원한다. 등록된 회원들을 대상으로는 ‘별다방 이야기’ 같은 문화예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회복의 여정을 함께한다. 이는 한 사람의 시민도 놓치지 않겠다는 하남시의 굳건한 의지를 보여준다.
생명을 지켜낸 진심, 권위 있는 수상으로 입증된 도시
정책의 성공은 철학만큼이나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 하남시는 각종 통계 지표를 통해 정책의 실효성을 입증하고 있다. 2024년 잠정 통계에 따르면 하남시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1.0명으로, 전국 평균 28.3명과 경기도 평균 27.3명을 크게 밑도는 전국 최저 수준이다. 특히 자살률이 낮은 순위에서 2022년과 2024년(잠정) 경기도 31개 시·군 중 2위, 2023년 5위를 기록하며 3년 연속 최상위권을 유지한 것은 하남시의 촘촘한 마음 방역 시스템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과 성과는 대외적으로도 높은 평가로 이어졌다. 2023년, 하남시는 경기도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지역 특화사업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우수기관 1위로 선정되며 경기도지사 표창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러한 평가는 중앙 무대에서도 이어져, 앞서 2022년에는 국회자살예방포럼이 주관한 ‘제4회 국회자살예방대상’에서 우수지자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현재 하남시장은 “하남시는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협력해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시정의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더욱 세심한 정책으로 시민 곁을 지키며, 우리시를 전국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공동체로 만들어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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